2007년 01월 01일
눈물의 맛..
# by | 2007/01/01 02:18 | 트랙백 | 덧글(0)
다빈치에서 헤르메스를 떠올리다. 2004/09/06 23:07 | 추천 0 스크랩 7 |
주말에는 침대에서 뒹굴며 책을 읽었습니다.
주위에서 입을 모아 재밌다고 난리길래 대체 어떤 책인가 궁금하여 집 근처 도서관에 비치해달라고 신청을 하였는데 두 달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길래 기다리다 못해 사고 말았습니다..... 라고 할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월세에 찌들리고 있던 탓에-_-; 동네 책 대여점에서 빌려봤습니다.^^;
역시나 명성에 걸맞게 처음 들린 대여점에는 2권밖에, 또 다른 대여점에는 1권밖에 없더군요. 덕분에 대여점 두 군데에서 책 빌리고 각각 반납하느라 얼추 지하철역 한 구간 정도 되는 거리를 걸어서 왔다갔다 했습니다.(지하철역 두 구간을 걸은 셈이죠. 책 빌리는데 투자하기엔 좀 먼 거리 아닙니까?) '언젠간 먹고 말거야!' 치토스 광고에 나오는 치타마냥 오기가 생겨서요. 두 달이나 기다렸는데 1,2권을 연달아 읽어치우지 못한다면 너무 슬프지 않겠어요?
재밌더군요. 파리와 런던을 배경으로 중세로부터 이어지는 비밀스러운 집단의 의례, 예수의 비밀, 기호학에 근거한 언어유희 등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집니다. 거기에다가 아름다운 여주인공과 멋진 남자주인공의 달콤한 로맨스도 한 몫하지요. 움베르토 에코와 베르나르 베르베르에서 재미있는 부분만 빼내 적당히 버무려놓은 것 같은 느낌, 이 정도면 휴일을 집구석에 처박혀 홀로 보내기에도 손색이 없습니다.
1권을 읽고, 저녁을 먹은 후, 또 2권을 읽고 대여점에 반납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굵은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졌습니다. 이마에 툭, 묵직한 빗방울이 떨어지는 순간 머리 속에서는 오래전 읽었던 책 한 권이 토스터에 넣었던 식빵이 다 익었을 때처럼 툭, 튀어나왔습니다.
1996년에 출간된 이 소설을 저는 98년 말, 대입 면접시험을 준비하면서 읽었습니다. 당시에도 요즘처럼 '논술과 면접이 당락을 좌우한다'는 무시무시한 말이 떠돌았는데 전 재수생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수능점수가 그리 좋지 못했던지라 필사적으로 논술과 면접에서 점수를 따야만 하는 상황에 처해있었답니다. 당시는 시절이 그래서 그랬는지 아니면 제가 시골 출신이라서 그랬는지, 면접을 잘 보기 위해 학원을 다니고 과외를 받는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던지라 혼자 힘으로 면접을 준비할 수 밖에 없었던 저는 궁여지책으로 동네 대여점에서 이 책을 빌려 읽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가 제가 원서를 넣었던 과 출신이라 책을 읽으면 전공에 대해 뭐라도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었죠.
당시 언론들이 '격조높다', '품위있다', '지적이다' 등등 재수생의 지적 수준으로는 도저히 접근하기 어려울 것 같은 표현을 써 가며 이 책을 칭찬했었기때문에 -_-; 부들부들 떨어가며 책장을 넘겼었는데 의외로 재미있더군요.
오래전 읽었기때문에 가물가물하지만 이 소설은 16세기에 이탈리아에서 활동했던 파르미지아니노라는 화가의 그림 '긴 목의 성모'에 그려진 기둥이 과연 무엇을 뜻하는가? 라는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으니 일단 파르미지아니노의 그림을 한 번 보실까요?
Parmigianino, Madonna and Child with St. Jerome (Madonna with the Long Neck),1534-35,
그림의 우측에 그려진 기둥을 보십시오. 성모의 옷자락으로 나뉘어진 부분 중 윗부분은 하나의 기둥으로 되어있는 반면, 아랫부분은 여러 기둥이 원근법으로 처리된 열주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보통사람같으면 '뭐 그냥 그럴 수도 있겠지' 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부분을 미술사학을 전공한 저자는 놓치지 않고 파고 듭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기둥의 정체에 대한 상상력을 펼쳐나갑니다.
책의 내용은 미술사를 전공하는 남자주인공이 느닷없이 맞닥뜨리게 되는 살인사건과, 서양미술사의 기독교적 전통의 숨은 그림자, 연금술 이야기 등에 초점이 맞추어져있지만 당시 '수험생'이었던 저는 '대한민국 수험생'답게 소설의 본질이 아닌 곁가지를... 그러니까, 화집과 소설을 대조해가며 소설에 나오는 그림들에 대한 배경지식을 익히는데 초점을 맞췄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파르미지아니노가 활동했던 16세기는 융성했던 르네상스의 끝물에 해당하는 시기로 그 시대의 화가들은 비틀리고 뒤집힌 요상한 형태의 그림들을 많이 그렸는데 인체의 비례와 균형을 중시했던 르네상스를 이상으로 삼았던 많은 사람들은 그 시기의 양식을 다소 경멸하며, '매너리즘'이라고 일컫는다...." 혹은 "'긴 목의 성모'의 인체비례는 비정상적으로 길고 구불구불한데 이를 전문용어로는 그것을 '스틸레 세르펜티나타(style serpentinata:뱀 양식)'라고 부른다. 그림에서 아기예수는 나무토막처럼 뻣뻣하여 흡사 시체처럼 보이는데 이것도 이상하다." ... 뭐 이런식으로, '밑줄 쫙' 하면서 달달달 외웠던 셈이지요. 네,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이란... 이렇게도 한심합니다...-_-; 여튼, 두 권짜리 소설을 전과 읽는 심정으로 읽어낸 이 시골뜨기 재수생은 서울의 높으신 선생님들이 눈을 부릅뜨고 앉아계신, 이름도 거창한 '전공 면접'장으로 벌벌 떨면서... 들어갑니다. 가슴이 두근거려서 차마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가엾은 재수생에게, 격조높고, 품위있고, 지적인 분위기를 풍기시던 한 교수님은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우리 과를 지망하면서 무슨 책을 읽었지?" 하, 하, 하, 순간, 머리 속에서는 크리스마스 트리에 매달린 알전구같은 것들이 색색으로 반짝이고, 승리의 여신 나이키가 날개의 흰 깃털로 볼을 스치고 지나가는 듯 합니다. "00의 00, xx의 xx, **의 **, 그리고 송대방의 '헤르메스의 기둥' 읽었습니다." 그리고 교수님은 의외라는 듯 묻습니다. "'헤르메스의 기둥' 읽었어? 어떤 내용이지?" 기쁨에 들떠 여기가 면접장인지 즈이 집 안방인지도 분간하지 못하는 재수생은 열에 들떠 헤롱대며외운 내용을 고대~로 주절댑니다. 혀도 잘 돌아가지 않는 어려운 이름 '파르미지아니노'를 실수없이 발음하려 애쓰며 긴 목의 성모가 어쩌구, 뱀이 어쩌구, 아기예수랑 나무토막이 어쩌구.... 전 해에 지망했던 대학에 몽땅 떨어지고, 스스로가 '유예된 스무살'이라고 이름지었던 어두운 터널에서 뭉기적대야만 했었던 재수생은 그해 설 무렵, 마침내 빛나는 합격통지서를 손에 쥐게 되었던 것입니다....(훌쩍) 입학해서 동기들과 비교해보니, 수능에서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점수를 받았음에도 비록 수업료 면제에 지나지 않았지만 기대치 않았던 장학금까지 받고 입학했던 걸 보면 저를 구원해 준 것은 '헤르메스의 기둥'임이 틀림없습니다. 대학시절 고학년이 돼 전공인 '르네상스와 바로크 미술' 수업을 들으며 파르미지아니노의 '긴 목의 성모'를 다시 배웠고, 당시 수업을 맡았던 선생님께서 "여러분과 같은 자리에 앉아 이 수업을 들었던 학생이 저 그림을 소재로 소설을 썼었지요. 지금 여기에 앉은 여러분들 중에서도 이 수업에서 배운 그림을 소재삼아 소설을 쓸 사람이 나올까요?" 말씀하셨을 때 옛 기억이 떠오르면서 왠지 가슴이 찡해지더군요. 대학 신입생시절 '미술사 입문'이라는 수업 시간에 도상학(圖像學)이라는 학문을 처음 접했을 때, 소설의 내용을 떠올리고는 선생님께 아는 것 없는 신입생 주제에 아주 많이 안다는 듯 "지오르지오네의 '폭풍우'가 도상학적으로 많은 논란이 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란 무엄한 발언을 했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습니다. Giorgione, The Tempest, 1505-10, Gallerie dell'Accademia, Venice. 소설을 읽었던 때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가만히 돌이켜보면 소설의 스토리나 소설이 근거로 삼았던 미술사적 지식 등은 '다빈치코드' 못지않게, 어쩌면 그보다 더 재미있고 탄탄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다빈치코드'는 미술작품을 소재로 하는 척 합니다만, 결국 소설에서 중심을 이루는 것은 쫓고쫓기는 추격전의 박진감, 아나그램(anagram)의 수수께끼가 가져다주는 흥미진진함 아닌가요. 반면 제 기억에 이 소설은 보다 깊이 있고, 단정하며, 우아합니다. '다빈치코드'보다는 보다 움베르코 에코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까 한 신문의 서평에서는 '다빈치 코드'를 일컬어 "'헤르메스의 기둥'의 헐리우드판"이라고 했더군요. 제가 읽은 느낌도 꼭 그러하였습니다. 그와 함께, '다빈치 코드'가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는데도 '헤르메스의 기둥'이 그럴 수 없는 것은 결국 언어의 문제때문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 약간 슬퍼지기도.... 곁들여, '헤르메스의 기둥'의 여주인공이 즐겨 하던 '에르메스' 스카프가 인상이 깊어, 대입과 함께 상경한 후 백화점을 기웃거리다가 우연히 '에르메스' 매장을 발견하고는 '하나 사 볼까' 하면서 들어갔다가 엄청나게 비싼 가격에 기겁하고 도망나왔던, 그리하여 우매한 재수생과 고매하신 작가님의 거리보다 더 엄청난 거리감을 , 소설의 여주인공에 대해 느꼈었던 '안 좋은 추억'도 부록으로 떠올랐답니다.^^ '다빈치 코드'를 즐겁게 읽으신 분들께, 재미있는 책 한 권을 더 권해드리고싶은 마음에, 야근하면서 이렇게 주절거려봅니다. | |
# by | 2006/12/31 13:07 | Minute | 트랙백 | 덧글(0)